맨 위로 이동회원가입1:1문의오시는길

무료
건강 상담
문의
전화
010-5341-4248
고객센터
홈페이지 관련문의
010-5341-4248
캠프예약 및 상담
010-3309-0894
운영시간
평일오전9시~오후5시
점심오후1시~2시30분
휴무주말 및 공휴일

야외저온수면과 볶은곡식 체험기

야외저온수면과 볶은곡식 체험기

 

이건영

 

난 어려서부터 항상 건강에 많은 문제점들을 안고 살아왔다. 늘 소화불량과 잦은 설사로 시달렸다 그리고 고교생 때 열병으로 꽤 고생을 했는데 의사가 장결핵으로 오진하는 바람에 6개월쯤 독한 결핵약을 먹고 소화기가 많이 망가졌다. 오진이라는 것을 안 것은 다른 병원에서 내과 전문의 선생님이 결핵의 흔적이 전혀 없다는 것을 말씀하신 뒤였다. 그 만큼 아플 때는 미련할 만큼 의사 선생님 말씀대로 열심히 약을 먹었다. 그러나 점점 몸은 나빠져 대학 재학 중에 위출혈로 생사를 넘나드는 순간도 왔다. 너무 힘들어 죽어가는 순간에 교회도 다니지 않는 인간이 간절히 기도를 했다. “ 하나님 제발 살려만 주세요. 다시 살아 날수만 있다면 하나님이 시키시는 것은 뭐든지 하겠습니다.” 5 분을 못 넘긴다고 의사에게 사형선고를 받은 난 며칠 만에 퇴원을 하고 양배추 녹즙을 먹고 며칠 만에 위궤양 약을 줄이기 시작해서 3개월도 안 된 사이에 약을 끊어버렸다.

그 후 완전하지는 않지만 몸이 점차 나아지며 건강에 무관심해졌다. 10 여 년간 외국 생활을 하면서 혼자 밥을 해먹다 보니 먹는 것도 채소보다는 싼 고기를 많이 먹었다. 16개월 동안 위험한 오지에서 배낭여행을 혼자 할 때는 먹는 것을 마음대로 할 수가 없어서 그냥 현지에서 구하기 쉬운 것만을 먹어야 했다. 구소련 지역의 아제르바이잔이란 나라에서는 카스피 해를 건너기 위해 배를 기다리다 발이 묶여서 약 일주일간 양고기만을 먹기도 했다. 일주일 후에는 온 몸에서 양고기 냄새가 났다. 그 게 쌓였던지 캐나다 토론토에서 대학원을 다닐 무렵 체중이 78키로까지 올라갔다. 머리는 멍하고 운동을 해도 몸이 자꾸 아프기만 했다. 지금 생각하니 반찬 만드는 것이 귀찮아서 주로 사다 먹었던 불고기 때문이었다.

2003년 공부를 마치고 귀국한 후 바쁘게 지내던 어느 날인 2007년경 학생을 가르치던 중 갑자기 몇 분 동안 책의 글자가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겁이 덜컥 났다. 그리고 몇 일후 운전 중에 갑자기 심장이 조여 왔다. 지금 생각하면 협심증 증상이었다. 이제 돈 버는 것보다도 건강이 훨씬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날부터 학생들 가르치는 시간을 줄였다. 그리고 1998년 북경에서 만난 지금의 아내에게 배웠던 침을 비롯한 자연요법을 다시 공부하기 시작했다. 이후 3년간 건강해지기 위해서 그리고 살기 위해서 침 뜸 벌침 사혈 등 미친 듯이 공부했다. 그 과정에서 알게 된 분들을 통해 10대부터 98세 먹은 아내의 할머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환자분들의 임상사례들을 접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먹는 것이 내 몸을 만든다는 것이었다.

2011년 초 우연히 채식을 20년 이상 하신 분들과 생활을 하는 기회가 왔다. 23일 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들의 생활방식은 너무 신선했고 그 날 이후로 나도 채식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1월초 오랫동안 아내와 꿈꿔왔던 동남아 7개국 여행을 실천에 옮기기로 했다. 삼개월동안 그 채식마을에서 산 선식을 먹고 다니며 배나 버스로 이동을 했다. 그런데 식이요법 초보자로서 가는 곳마다 바뀌는 음식 기후 등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우리로 따지면 겨울에서 여름으로 다시 겨울로 반복되는 기후의 변화 속에서 캄보디아, 베트남까지 잘 버티던 몸이 홍콩에서부터 아프기 시작하여 어떻게 마카오를 갔다 왔는지 모를 정도로 아픈 몸을 이끌고 비행기를 타지 않는 다는 원칙을 어기면서 귀국행 비행기에 몸을 싫었다. 이제 내 몸도 배낭여행을 하던 건강한 30대의 몸은 아니었다. 마음은 젊은데 몸은 이미 40대의 병 투성이의 몸이 되어있었다.

여행을 마친 후 난 심한 우울증에 빠졌다. 사람을 만날 수도 없었고 사회생활을 할 수도 없었다. 실컷 놀고 난 다음에 우울증에 빠졌다 하면 남들이 비웃을 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난 심각한 상황이었다. 8층 아파트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막 뛰어내리는 자신이 보였다. 너무 힘들어서 아내의 이모님이 목사님으로 계시는 교회에 다니면서 안수 기도도 받고 매일같이 할 줄 모른 기도를 하다가 성경위에 손을 올려놓은 채로 잠이 들기도 했다. 병원 한 번 안가고 그렇게 심한 우울증에서 4개월여를 헤매다 하나님의 도움으로 난 정상을 회복하기 시작했고 여름부터 다시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원장님 강의에서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우울증도 대부분 고기 등 좋지 않은 음식에서 온다고 합니다.

2012년 초 우연히 인터넷에서 홍영선 볶은 곡식을 알게 되었다. 볶은 곡식 사이트의 구석구석을 다 읽고 동영상을 하나도 안 빼 놓고 외울 정도로 여러 번 반복해서 보았다. 여러분들의 체험기가 도움이 되었는데 강인숙씨와 김영선 씨가 쓴 글이 인상적이었다 볶은 곡식을 주문해 먹어 보았다. 열심히 배운 대로 아침 점심 볶은 곡식을 먹고 운동하고 했더니 2주만에 71킬로에서 67킬로까지 체중이 내려갔다. 그 상태에서 그 채식 마을에 들렀는데 자기들 보다 훨씬 얼굴이 더 좋고 반짝반짝 빛난다고 놀라워했다. 사람들은 채식하면 건강할 거라는 생각을 하는데 이 곳 분들은 피는 깨끗해서 고혈압이나 당뇨와 같은 혈관 병은 없으나 뇌나 심장에 문제가 많은 듯 했다.

이 분들과의 인연으로 이 곳 채식마을에서 보내 주는 생채소를 이 후 6개월 정도 먹었는데 점점 몸이 안 좋아지고 설사를 하고 몸이 피곤하고 냉해져만 갔다. 생각해보니 볶은 곡식을 먹었을 때가 훨씬 더 나은 듯했다.

8월 말 그동안의 식생활을 반성을 하고 다시 홍영선 볶은 곡식 사이트를 들어가 공부를 했다. 그리고 아내와 함께 귀래에 있는 볶은 곡식 연구소에 갔다. 원장님의 자상한 한 시간의 설명을 듣고 다른 분들과 함께 점심을 볶은 곡식으로 떡과 반찬과 함께 시식을 했다. 어는 것을 먹어도 맛이 있고 고소했다. 그 날부터 3개월 좀 못되는 시간 동안 되도록 볶은 곡식으로 이식을 하려고 노력을 했다. 어쩌다 저녁을 먹으면 후회하는 날이 더 많았다. 여름동안에는 계속 문열어놓고 자다가 추워지면서 아내가 싫어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다시 문을 닫고 잤다. 다시 몸은 산소부족인지 잘 피곤해졌다. 그 동안 전반적으로 좋아진 점을 열거해보면 성격이 많이 느긋해졌고, 식은 땀 나는 것이 사라졌고, 식곤증과 피로도가 현저히 줄었다. 그리고 추위도 이전에 비하면 현저히 덜 탔다. 집에서는 아예 난방을 틀지 않았다. 난방을 세게 튼 남의 집에 가면 숨이 막혔다. 이제 볶은 곡식이 어느 정도 몸에 적응이 된 듯 했다.

이 무렵 김일성 김정일이 장수를 위해 해 왔다는 동면요법에 깊은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는데 이 십 여 년 전부터 산에서 저온수면을 해 오신 홍원장님이 하시는 야외수면을 체험하고 싶어졌다. 1118일부터 22일까지 45일 예약을 했다. 연초에 볶은 곡식 사이트에서 영하 1520도의 한겨울에 하는 야외수면을 보았을 때 저건 특전사 요원들이나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포기했는데 이제 내가 체험하려는 것이니 그야말로 장족의 발전이었다. 원주 날씨를 보니 최저기온이 평균 영하삼도로 김일성 김정일이 좋아했다는 영하 5도에 근접해서 딱 좋은 날씨였다. 일요일 오전 원주 홍영선 볶은 곡식 연구소에 도착 원장님과 한 시간쯤 담소를 나눈 후에 볶은 곡식으로 점심을 먹고 문막에 있는 숙소로 옮겼다. 이 숙소는 낮 동안에 쉬는 곳이었다. 저녁 여덟시 경에 차를 타고 다른 분들과 함께 삼 킬로 거리에 있는 산속에 있는 야외수면 체험장으로 이동을 했다. 이 날 밤은 열 세분 쯤 되는 듯했는데 많을 때에는 20명도 넘었다. 5060대 되신 여자 분들이 많았다. 경험담을 들어보니 야외수면을 15년 하신 여자분도 계시고 일 년 되신 여자분 그리고 한 달 쯤 되신 여자 분도 계셨다. 특히 15년 경험하신 분은 발이 내 손보다도 훨씬 더 따뜻해서 난로와 같았다. 너무 신기해서 허락을 맡고 직접 발을 만져보기까지 했다. 항상 손발이 차서 사람들과 악수 할 때 민망했었는데 나도 열심히 하면 좋아지리라는 희망이 생겼다.

안내해 주신 장은숙 님이 침낭 속에 내피를 넣어주시고 회중전등과 만일을 위한 소변용 플라스틱 통도 준비해 주셨다. 다 벗고 침낭 안으로 들어가라고 했는데 첫날이라 겁이나 내복만 입은 채로 들어갔다. 다음 날 부터는 배운 데로 팬티만 입은 채로 침낭 속에 들어갔는데 훨씬 더 따뜻했다. 몸의 열기가 침낭 안에서 맴돌기 때문이라 했다. 아침 다섯 시 10분에 알람을 맞추었다. 30분쯤 지났을 무렵 온 몸이 따뜻해짐을 느꼈고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폐가 너무 시원하게 뻥 뚫리는 듯했다. 밤중에 두 번쯤 소변보려고 잠이 깼는데 소변기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침낭 안이 천국같이 따뜻해서 밖에 나오기가 싫었다. 5시 십 분에 알람이 진동을 해서 일어나자마자 화장실에 들른 후 냉수욕을 했다. 찬 물속에 발을 먼저 담그고 몸 전체를 물속에 담갔는데 삼십초도 못 견디고 나왔다. 짜릿한 느낌이 온 몸을 감싸고돌았다. 젖은 수건으로 냉수마찰을 하고 바로 옷을 입었다. 몸은 춥지 않았지만 손발이 시려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데 밤에 뵈었던 세 여자분 들이 냉수마찰 후에 아파트까지 삼 킬로를 뛰어간다고 했다. 수은주가 영하 7도를 가리키는 이 새벽에 특전사 부대원들을 보는 듯했다. 같이 뛰어 가자는 걸 난 자신이 없어 조용에 5시 반에 돌아오는 차에 몸을 실었다.

여기 머무르는 사박 오일 동안 매일 1회씩 다른 분들과 함께 산책이나 등산을 했고 식사는 아침 점심 두 끼를 소금을 쳐서 떡과 함께 맛있게 먹었다. 오후에는 목마를 때 소금을 간간하게 타서 마셨더니 배고픈 게 사라졌다. 운이 좋게도 원장님과 평창으로 드라이브할 기회가 주어졌는데 옆집의 마음씨 착한 형님처럼 이 것 저 것 설명해 주셔서 편안한 마음으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이 자리를 빌어 원장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집으로 돌아와 벌써 여섯 밤을 아내와 다른 방을 쓰며 문을 열어 놓고 자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 맨발로만 생활을 한다. 식사는 두 끼로 완전히 정착이 되었다. 그리고 일어나면 무조건 냉수욕부터 한다. 영하 칠 도의 야외에서 냉수욕을 경험한 후여서 그런지 집안에서 냉수욕 하는 것은 애들 장난 같다. 몸이 많이 따뜻해진 탓인지 별로 추위를 타지 않는다. 혼자서는 하기 힘든 이런 좋은 습관을 좋은 분들과 같이 좋은 공기를 마시고 좋은 음식을 먹은 탓인지 힘들지 않고 배웠습니다. 이제 난방비 걱정 없고 식비도 걱정이 없다. 전 세계 어느 곳에 이런 좋은 것을 가르쳐 주는 곳이 있을까 싶다. 이런 정보 홍수의 시대 속에서 볶은 곡식과 별 보고 야외에서 자는 것을 체득하게 된 난 얼마나 행운아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으로 아내 이야기인데 처음에 무슨 볶은 곡식이냐며 맛있는 생선은 절대로 못 끊는다던 아내가 어느 날부터 슬그머니 볶은 곡식을 먹더니 이제 복은곡식 광팬이 되었습니다. 성격도 많이 명랑해지고 추위도 덜 타는 것을 보면 볶은 곡식이 정말 올바른 식사 습관인 듯합니다. 또한 장모님도 벌써 두 달 동안 볶은 곡식을 드시고 체중이 3.5키로 정도 빠지고 컨디션이 좋아졌다고 기뻐하십니다.

 

20121128일 성남에서

 

공유하기
등록자

이건영

등록일
2012-12-07 11:57
조회
11,935

댓글 2

스팸방지코드
손영균
2013-11-14 09:28
우연히 이 사이트에 들어와서 좋은 이야기 듣고 가요. 저도 성남에 사는데 이번 겨울에 한번 캠프에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감사해요.
관리자
2012-12-10 00:00
건강을 회복하고 계시는 모습을 보니 뿌듯합니다^^ 꼭 건강한 생활 되찾으시길 바랍니다^^
회사명: (주)홍영선볶은곡식사업자번호: 571-88-00188대표: 조혜원개인정보관리책임자: 조일래법인번호: 141211-0077656통신판매업신고번호: 제 2022-전북고창-036호주소: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고수농공단지길 18 TEL: 063-564-9494, 063-564-9494FAX: 063-564-4494이메일: cil267@naver.com
Copyright (c) 2024 All rights reserved. Hosting by 오마이사이트
하단로고